Gustav Klimt
Koloman MoserEgon Schiele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
크리스마스 전날 휴가를 내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2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는 비엔나를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도시 확장 계획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비엔나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꼽히는 유명한 건축물들이 지어졌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때 새로 지어진 건물에 벽화를 그리면서 크게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전통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일은 클림트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예술의 길을 탐구했고,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특별한 예술 운동을 시작합니다. 클림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클림트와 동료들이 만든 비엔나 분리파의 활동으로 이제 비엔나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클림트의 대표작 ‘유디트’, ‘키스‘ 작품은 없었다.
클림트와 함께한 분리파 작가들 작품, 특히 제자인 에곤 실레 중심이었던 듯 하다.
원탁 |
에곤 실레 (1890–1918), 1918년, 종이에 석판화
에곤 실레가 그린 제49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의 포스터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는 고요한 공간, 화면의 가장 위쪽에 그려진 이가 에곤 실레입니다. 비어 있는 실레의 맞은편은 사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자리입니다.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형성된 예술 운동으로,
전통적인 예술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예술을 추구하던 그룹입니다. 1897년에 결성된 이 그룹은 회화, 건축, 디자인,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배경과 형성
19세기 말, 유럽 예술계는 고전주의와 아카데믹한 전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는 이탈리아 “분리파(Sezession)” 운동과 유사한 맥락에서, 기존의 보수적인 예술 단체에서 ’분리(secession)’를 선언하며 결성되었습니다.
수풀 속 여인 |
수풀 속 여인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898년경, 캔버스에 유화, 클림트재단
구스타프 클림트는 외국의 선진 예술을 경험하며 새로운 예술 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890년대 후반 클림트의 초상화에서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련된 모자를 쓰고 소매가 풍성하게 부푼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 파란 눈으로 관람자를 바라 보고 있다. 여인 뒤쪽에 우거진 수풀과 블라우스 소매를 거친 붓놀림으로 두껍게 칠해 표면 질감이 두드러지도록 표현했다.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
큰 포플러 나무 II (다가오는 폭풍) |
큰 포플러 나무 II (다가오는 폭풍)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1902/03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구스타프 클림트는 휴가를 보낸 아터제 호수 근처 예배당 풍경을 그렸다. 우뚝 솟은 거대한 포플러 나무가 강한 인상을 준다.
빛과 색의 마법, 모저의 꽃 그림 |
빛과 색의 마법, 모저의 꽃 그림 - 마리골드
콜로만 모저 (1868–1918), 1909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설립을 이끈 콜로만 모저는 다양한 재질의 공예품을 만들고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하루 또는 계절에 따라 빛과 색이 달라지는 장면을 담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이후에는 강렬한 색채를 띠는 정물과 꽃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기도하는 소녀, 신성한 무덤, 부분 II |
기도하는 소녀, 신성한 무덤, 부분 II
알빈 에거-리엔츠 (1868–1926), 1900/0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흰옷을 입은 어린 소녀가 곧은 자세로 서서 맨발로 기도하고 있다. 두껍고 힘찬 붓질로 어두운 공간에서 기도하는 어린 소녀의 소박한 신앙심과 경건함을 표현했다.
국화 |
국화
에곤 실레 (1890–1918), 1910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섬세하게 그려진 하얀색 국화는 비엔나 분리파가 지향한 장식 미술의 영향을 보여 준다. 공간감 없는 검은색 배경과 대조를 이루는 국화의 구성에서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한 자포니즘과 일본 목판화의 특징이 엿보인다.
목화솜 따는 소녀 |
목화솜 따는 소녀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08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오스카 코코슈카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호프만의 제안으로 1908년 비엔나 예술전람회의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직선적이고 단순한 윤곽선, 음영이 없는 색면의 사용, 두꺼운 서체 등은 비엔나 분리파가 만든 포스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피에타 |
피에타
연극 <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을 위한 포스터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1909년, 종이에 다색 석판화, 레오폴트미술관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오스카 코코슈카는 1909년 비엔나 국제예술전람회에서 공연한 연극의 극본을 직접 썼다. 이 연극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을 폭력과 욕망에서 비롯된 권력 투쟁으로 묘사했고, 강렬한 감정과 파괴적인 주제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피 흘리는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피에타> 도상이 그려진 이 포스터에는 애도하는 모습 대신 분노에 찬 야수같은 성모가 등장한다.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패널에 유화 물감과 불투명한 물감, 레오폴트미술관
실레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한 예술가였다. 깔끔한 흰색을 배경으로 어두운 옷을 입은 인물과 강렬한 붉은색의 꽈리 열매가 작품 좌우에서 균형을 이룬다. 어깨를 살짝 돌리고 관람자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자신감과 연약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얇고 세밀하게 그려진 선에서는 실레의 예민한 성격과 내면의 불안한 감정이 전해진다.
긴 머리를 한 자화상 |
긴 머리를 한 자화상
에곤 실레 (1890–1918), 1907년, 캔버스에 유화, E. 와 H. H. 컬렉션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는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다. 강한 빛을 받아 밝게 표현된 왼쪽 얼굴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 자화상은 실레 자신을 깊이 있게 표현하면서도 내면의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를 보는 이 II (죽음과 인간) |
스스로를 보는 이 II (죽음과 인간)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실레는 이 작품에 ‘스스로를 보는 이’ 또는 ‘죽음과 인간’이라는 두 개의 제목을 붙였다. 그림 속 인물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 있고, 그 뒤로 두 번째 자아가 유령같이 그려져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유령이 인물의 어깨를 감싼다. 주인공은 본래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자아에서 분리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이 작품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곳은 아래에서 뻗어 올라온 ‘손’이다. 실레는 자신의 작품에서 손을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또한 어두운 색조와 날카로운 선으로 주인공의 고통과 불안함을 표현했다.
계시 |
계시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계시>! 당신은 위대한 인물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사람은 자신의 빛을 일평생 소비하며 살아갈 뿐이다. 빛이 모두 소진되면 더 이상 빛나지 못한다. 뒤돌아선 사람은 위대한 인물에 매혹됐다. 그는 무릎을 꿇고, 눈을 뜨지 않고도 세상을 보는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들이 발하는 넘치도록 충분한 빛은 무릎 꿇은 작은 인물과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상징한다.”
시인 |
시인
에곤 실레 (1890–1918), 1911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밑그림 없이 빠른 붓질로 그린 이 작품에서 에곤 실레는 자신을 뒤틀린 자세를 한 시인으로 표현했다. 어색할 정도로 심하게 왼쪽으로 꺾여 있는 실레의 머리는 뒤쪽 흰색 공간에 둘러싸여 있다. 눈썹을 치켜뜬 의심에 찬 눈초리는 옆을 향하고 있다. 창백해 보이는 몸에 검은색 윗옷만을 걸친 실레는 어두운 배경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머니와 두 아이 II |
어머니와 두 아이 II
에곤 실레 (1890–1918), 1915년, 캔버스에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어머니는 얼굴과 맨발을 제외한 몸 전체를 초록색 천으로 가리고 있다. 어머니의 움푹 꺼진 눈과 입은 해골을 연상시킨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운 아이 역시 죽어 있는 듯하다. 실레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은 <피에타>에 빗대 이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였던 실레의 불안과 상실감, 그리고 내면의 갈등을 보여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 (겨울 나무) |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 (겨울 나무)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캔버스에 연필과 유화, 레오폴트미술관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무가 회색 조각들로 이루어진 하늘로 가지를 뻗고 있다. 나무줄기가 은회색 배경과 거의 구분되지 않아 나뭇가지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추상적인 선처럼 보인다. 에곤 실레는 풍경화 속 자연에 인간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부여했다. 하늘에 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외롭고 고립된 연약함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강렬한 생명력도 전해진다.
골고다 언덕 |
골고다 언덕
에곤 실레 (1890–1918), 1912년, 캔버스에 유화, 불투명 수채, 연필, 레오폴트미술관
얼핏 보면 에곤 실레가 살았던 노이렝바흐 근처 들판을 그린 작품 같지만, 실레는 이 들판의 풍경을 빌려 골고다 언덕을 표현했다. 여러 요소를 활용해 자연을 종교적 숭배의 장소로 만들어, 실레의 초기작이지만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 준다.
블타바강 가의 크루마우 (작은 마을 IV) |
블타바강 가의 크루마우 (작은 마을 IV)
에곤 실레 (1890–1918), 1914년, 캔버스에 유화, 검은 분필, 레오폴트미술관
에곤 실레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시선으로 크루마우의 슐로스베르크 언덕 건너편 마을 풍경을 그렸다. 마을 집들을 노란색, 흰색, 파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표현했는데, 실레가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그린 건물들에서는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물과 지붕은 대체로 어두워 실레가 도시 풍경에서 반복적으로 보여 준 고독과 소외감이 묻어난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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